어떤 관계나 경험이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지속해서는 안 될 나쁜 관계도 있습니다. 한 사람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그 사람의 정신을 병들게 만들고 본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구로 전락시키는 이러한 종류의 관계, 그런데 많은 경우 이러한 관계는 스스로 자각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바로 아래와 같은 두 가지 특징 때문입니다.
1.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 발생하기 때문
어떤 사람이 독으로 가득 찬 늪으로 들어간다면 누구나 말리려 할 겁니다. 그러나 그 독이 객관적으로 나쁜 독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만 독으로 작용한다면, 나쁘다는 자각조차 하기 힘들 텐데요. 그래서 주변에 그 누구도 그 사람을 구하려 하지 않을뿐더러 그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가족이나 애인, 아주 친밀한 친구와 같이 내밀한 관계에서는 이렇듯 남들 눈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내게는 독성으로 작용하는 관계가 맺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독성관계 안에서 힘들어하는 사람 역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로만 돌리면서 자책하기 일쑤입니다. 다른 사람은 들어가도 아무 문제가 없는 늪이 자신에게만 독으로 작용한다면, 보통은 늪이 아니라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고통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기도 힘들어집니다.
2. 다른 정상적인 관계와 일부 특성을 공유하기 때문
분명 독이 되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정상적인 관계처럼 합리적으로 보일 때가 많습니다.
이 특징은 가족이나 군대처럼, 불가항력적으로 내가 소속되어 있고 쉽게 관계를 끊을 수도 없는 관계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한마디로 나쁜 관계 특유의 폭력적이고 병적인 특징을 다른 관계에서도 그렇다고 괜찮은 것인양 설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알코올 중독으로 폭력과 폭언을 하며 자식의 정신에 치유되지 못한 아픔을 준 아버지는 항상 원래 ‘이 정도도 안 하는 아버지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자신을 합리화하고, 그 합리화를 자식에게 강요합니다. 군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군대에서 병사들끼리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가혹행위를 군기라는 정상적인 행위 속에 숨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신이 독성관계 안에 있어도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혼란스러워하게 됩니다. ‘이거 다른 사람도 다 이렇게 사는데 나만 이렇게 힘들어 하나?’ 라고 생각하거나 심한 경우는 아예 의문을 제기하는 시도 자체를 포기합니다. 우리는 종종 그것을 적응이라고 착각하곤 하죠. 부당함이 당연한 것으로 탈바꿈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실질적으로는 세뇌된 것에 가깝습니다.
흔히 '가스라이팅'으로 여겨지는 이와 같은 관계는 스스로 알아차리기가 상당히 힙이 듭니다.